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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일요일 - 아버지의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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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누구나 그렇듯 나도 가끔 의사와 함께 검사실에 들어갈 일이 생긴다. 나는 병원에 갈 때 사전 지식을 갖추는 편이다. 그들은 다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의사라고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수록 느끼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 잠들어 있는 동안 나의 몸에 누군가 칼을 들이대는 수술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와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미를 지녔다. 그런데 수술은 내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의사를 신뢰하고 그가 무엇을 발견하든지 거기에 순응해야만 했다. 그는 수술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속 문제도 그는 볼 수 있다. 내가 마취되어 잠들어 있는 동안 그는 깨어 있다. 그래서 수술에 임하기 전에 나는 의사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무엇이 옳은 결정일까 고민도 해 봤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말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 확인하신 다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해 주십시오.”
기도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주님,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제가 볼 때 해결책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들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제가 아무리 이러쿵저러쿵하더라도 주님께서 최선이라고 여기시는 것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생각이 없이는 성숙한 기도가 나올 수 없다. 자기가 원하는 특정한 목표를 애초에 정해 놓고 시작하는 기도를 나는 많이 들었다. 나 자신도 그런 기도를 많이 했다. 사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대부분은 요구 목록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참 많다. 심지어는 삶의 한 부분을 고쳐 놓아 달라거나 기적을 보여 달라는 등 하나님께 생떼를 부리는 기도도 들어 본 적이 있다. 분명하게 표현하고 확신 있게 주장하는 기도도 좋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 사전에 ‘생떼’라는 말은 없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 요청한 직후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버지, 당신께서 최선이라고 여기시는 것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로렌 사이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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