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인하여 내가 또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 엘렌 화잇의 죽음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우리는 연초에 조셉 베이츠, 제임스 화잇, 그리고 엘렌 화잇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창설자임을 살펴 보았다. 베이츠는 1872년에, 제임스는 1881년에 사망하였으나, 엘렌 화잇은 1915년까지 재림교회를 계속 지도하였다. 그녀는 비록 교단에서 아무 공식적 행정직을 맡았던 적이 없었지만, 그녀의 카리스마적 권위는 실로 엄청나서, 그녀의 글과 권고들은 개인들과 재림교 교단 차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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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림교인이 아닌 그녀의 이웃들의 말에 따르면) “항상 그처럼 사랑스러운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던, 작은 체구의 백발 노인인 엘렌은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가족과 친지들에 의하면, 그녀의 마지막 말은내가 믿은 이를 나는 안다.”(자서전, 448)였다. 그녀의 임종은, 그녀의 아들 윌리에 따르면, “다 타서 꺼지는 촛불처럼 너무도 조용하였다.”


그녀의 임종은 소리 없이 조용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긴 생애는 쉴 새 없는 활동과 성취의 연속이었다. 고령임에도 놀랍도록 활동적이던 그녀가 참석한 마지막 대총회는 워싱턴 D.C.에서 열렸던 1909년 대총회였다. 총회가 끝난 후 그녀는 그녀가 65년 전에 예언적 봉사를 시작한 메인 주 포틀랜드의 고향을 방문하였다. 이것이 그녀가 미국의 동부를 돌아본 마지막 여행이었다. 비록 고령이었지만, 5개월에 걸친 그 여행 기간 중 그녀는 27개의 장소에서 72회의 설교를 하였다.


북가주의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여생을 전적으로 <사도 행적>(1911), <복음 사역자>
(1915), <엘렌 G. 화잇의 자서전>(1915), <대쟁투> 최종판(1911), 그리고 <선지자와 왕>(사후 1917년 출판)의 저술에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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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엘렌 화잇은 엠즈헤이븐(Elmshaven) 자택에서 무엇에 걸려 쓰러졌다. X-레이 검사 결과 좌측 대퇴골에 금이 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5개월을 침대와 휠체어에서 보냈다. 7 24, 그녀는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 소재한 오크힐 묘지 그녀의 남편 옆에 묻혔다. 그들은 나란히 누워 주님의 재림 때 있을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그 소망을 가르치기 위해 그들은 평생을 바쳤던 것이다.

내 소망은 주님을 공중에서 영접하는 그 날 공중에서 그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그들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 당신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히시며 하늘 책에 적힌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하였다고 기록하신다. 그리고 그는 온 하늘 앞에서 그들을 당신의 것이라고 공언하신다. 그들의 대적 사단은 참소자와 기만자로 밝혀진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자의 원한을 풀어 주실 것이다(COL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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