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페이스북에 들어가보니

첫 페이지가 세계의 여러 곳,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와 미주에서 온

생일 축하 인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눈에 띄는대로 간단하게 답글을 달고 비 내리는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여보, 아이들이 스카이프를 켜달래요.”

앤드루스 신학대학원에 가있는 두 아들들을 스카이프 동영상으로 연결했다.

커다란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다했을까.

생일 축가를 부르고 초불을 껐다.

딸 가진 부모들이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아들들과 스카이프 동영상 통화를 마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 동안 어머니께 말씀 드려 허락을 받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대부분 내 또래가 다 그렇겠지만 생일이 음력으로 되어 있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음력으로 넉넉하고 풍성한 추석 이틀 전 시원한 8월 13일이 생일인데

외국인 친구들은 광복절 이틀 전 무덥고 후덥지근한 날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로 생일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한다.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 태어난 1953년의 달력을 조회하여

음력 8월 13일을 양력으로 환산해보니 9월 20일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올해 음력 8월 13일이

양력으로 9월 20일이다. 생일을 조절하기에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나 나의 생일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관계가 있어

함부로 바꿀 수는 없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먼저 낳아주시고 은혜를 감사드리고 조심스럽게

생활 속에서 겪는 불편을 말씀드린 후에

마침 올해는 음력과 양력이 같은 날이니 올해부터 양력으로 생일을 기념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여쭈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게 어디 네 생일이냐? 내가 죽은 다음에나 그렇게 해라.”

그것으로 토론은 끝났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께서 9월 20일은 내 생일이 아니라고 하시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안식일 변경에 대한 토론은 끝났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은 내 생일을 내 편의에 따라 임의로 바꿀 수 없듯이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은

내 생명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다음 날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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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는 신묘 목사님 내외분께서 생일 선물을 주셨다. 수제 넥타이, 바탕에 대나무가 있어서 대나무 화분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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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큰 아들 권명, 오른쪽이 작은 아들 권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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