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미처 기대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금요일에 도착하여 도착하자마자 안식일을 보내고 일요일부터 전도회를 시작하는 것, 이것은 본래 우리들이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일정을 맞추고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일정이었다. 그런데 이 일정은 정말 기가 막힌 일정이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까지는 대부분이 직장인인 행복교회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이틀 반을 함께하면서 정이 든 친구들은 월요일 부터도 가급적 시간을 내어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노방전도를 할 때도 대원 두 명 한 팀에 대만 친구 한 명 씩이 따라 나가게 되었다. 가장 바람직하다 여기면서도 절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도착해서 일정을 시작했어도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저녁 때 짧은 레크리에이션을 마치고 한글반과 성경공부로 분반을 하려고 하는데 뜻밖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성경공부를 선택했다! 결국 한글반은 대원 한 명이 전담하여 서너명의 친구들 만을 데리고 하게 되었고, 다른 친구들은 일대 일에서, 이대 삼 정도의 인원으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혹시 한글반 친구들이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으나 기우였다. 불편해 하기는 커녕 많은 친구들이 관심을 보이며 매일매일 참석하였다. 혹시 시간이 없어 못 온다 하더라도 무슨 요일에 오겠다고 대원들과 약속을 하고 그 날짜에 꼭 다시 참석했다. 다들 집에 돌아가지를 않아 밤 10, 11시까지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억지로 보내곤 했다. 그 시간에 집에 돌아가서 다음날 출근하고 저녁 때 또 교회에 오는 것이다. 어지간히 열성이 있는 교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정말 놀라웠다. 어떤 친구는 일주일 내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울면서 출근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저녁마다 와서 밤 늦게 돌아갔다.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드러나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에 우리는 압도되었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했다.

언어의 문제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명색이 한글반 친구들이기에, 통역이 필요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예 통역이 가능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소그룹마다 한 명씩 배치했다. 그리고 사모님과 내가 들어가니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꼭 맞았다. 노방전도를 할 때는 통역이 없었지만 어떻게 된 노릇인지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방전도를 통해 알게 된 한 친구는 매일 매일 우리 대원을 만나더니 마지막 날에는 우리에게 쪽지를 써 주었는데, 그 쪽지 내용은, 자기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고, 우리가 써 준 성경절을 노트에 붙이고 마음이 어두워질 때마다 본다고 하는 것이었다. 교회 근처 대학의 학생들 중에도 여럿이 행복교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교회의 핵심 맴버들도 거의 날마다 참석했다. 몇 몇 친구들은 한 번씩 함께 노방전도를 나갔다 오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저녁때는 그들만 따로 한 팀으로 묶어서 목사님과 함께 말씀묵상(QT)을 하도록 했다. 교회의 기둥이 될 사람들이 하나로 묶였다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말씀묵상하는 법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보았다는 것. 이것은 말할 수 없이 귀한 결실이었다. 이제까지 이 일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해 왔는지!! 말씀을 나누며 너무나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이 눈물나도록 감사했다.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정말 숨가쁘게 달려 왔다. 아침에 일어나 말씀묵상하고, 식사하고, 예배드리고, 노방전도 나가고, 돌아와서 저녁먹고, 레크리에이션으로 저녁 집회 시작하고, 개인 성경공부와 한글반 진행하고, 뒷정리하고, 피드백하고, 기도회하고, 드디어 일정이 마쳐지면 다들 녹초가 되었지만 바로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때가 더 많았다. 그 중간중간에도 전에 만났던 영혼들과 애프터가 잡히면 쉴 틈 없이 달려가 그 친구를 만나 복음을 전했다. 얼마 안되는 관광 일정도 차량 사정이 허락하는 한 영혼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대원들이 한 명 씩 번갈아가며 아프기도 했다. 여학생들이 어떻게 이럴까 싶을 정도로 씻는 데나 꾸미는 데는 무신경했다. 그럴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대신 자기가 맡은 영혼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랬기에, 그 친구들도 계속해서 대원들을 만나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기꺼이 대원들이 전하는 기별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전도회를 마치면서 침례식은 하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에 침례식이 있었던 터라, 급하게 또 침례식을 하면 행사성으로 끝나게 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정기적인 성경공부 시간을 만들고 앞으로 성경공부를 해 나가기로 했다. 이 또한 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일이었다.

 

이 전도회를 끝으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12월에 일 차로 귀국했을 때는 반치아오의 영혼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무척 컸다. 사랑을 주기 위해 왔으면서도 너무 받기만 하고 돌아가는 것 같아서, 일년 동안 함께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조금 밖에 전해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특별한 전도회를 준비해 주셔서, 일주일이나마 나의 마음을 마음껏 쏟아주고 돌아올 수 있었다. 캠미와 함께 대만 땅을 밟는 순간, 나는 내가 사랑하는 땅에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땅은 내게 외국 같지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땅이었다. 그 후로 일주일 동안, 나는 대원들이 눈에도 티가 팍팍 날 정도로 행복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전도회 기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뛰어다니며 통역을 했다. 그동안 배운 중국어가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 기뻤고, 내가 이제껏 전하지 못해 미안했던 복음의 이야기들이 든든한 캠미 대원들을 통해 사방에서 전해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감사함으로 가슴이 터질 듯 하였다.

이제 나는 그 땅을 떠나 또 다른 곳,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시는 곳으로 가지만 복음의 씨앗을 품은 소중한 친구들이 내가 사랑하는 반치아오 행복교회에서, 멋진 목사님과 사모님과 함께 하나님에 대해 배우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정말 소중한 위안이 된다. 더구나 얼마 전에 새로운 선교사까지 왔다고 하니 얼마나 더 감사한 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고 계신 거룩한 땅에 내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과 함께 그분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참으로 큰 영광이었다. 요즘에도 그리움 때문에 종종 눈물이 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곳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그리고 그렇게 믿기에, 감사함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땅을 위한, 그 귀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앞으로도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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