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오랜만에 들어오니 쓸 말이 많은데 무엇부터 어떻게 써야 할 지를 모르겠네요. 사실 "윤주 생각 콩고에는" 시리즈도 많이 써 놓았고, 그 간의 저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는데, 전기와 인터넷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되든대로 간단하게 써 볼까 합니다.

생일날 오토바이와 함께 넘어진 후 몇 일 안되어 말라리아 진단을 받고 여러 날 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6년동안 1번은 걸리리라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다행히 증상이 남보다 경미하고 열도 안났지만, 약과 싸우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 전에 시리즈 글을 하나 올리려고 타이핑을 해 뒀었는데, 정목사가 제 컴퓨터 정리해준다더니 다 날렸지 뭐예요. 마침 그 글만 수첩에 안쓰고 바로 타이핑 한 것이였는데.... 그래서 제가 "원숭이만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핀잔을 줬어요.
그런데, 정목사가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의기소침해 하더라구요. 사실 그 날 한국에서 보낸 컨테이너가 오기로 했는데, 또 다른 서류를 요구한다는 거에요.

고아원을 돕기 위한 빵기계들과 위생병원에서 기증한 중고 의료기기들, 그리고 우리 짐이 조금 들어 있었는데, 세금을 면제받기 위해서 온갖 서류들을 준비했지만,  매일 다른 서류들을 요구해서 너무 많이 지체되기에 이미 많은 세금을 물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날은 확실하게 온다고 한 날 부터 몇 일이 지나있었고, 그 이후로 저희는 매일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런 와중에 제가 말라리아 진단을 받았거든요. 사실 그 이전 약 2주전부터 제가 식사를 거의 제대로 못했어요. 선교사 훈련 기간동안 배운 것 가운데, 문화 충격이 이런 것인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다른 모든 것들은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음식은 많이 힘들거라 생각했지요. 그나마 이 곳 콩고의 음식이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는 제게 덜 힘들지만, 여기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삶은 야채들을 보기도 싫더라구요.
아무리 선교사 정신으로 즐겁게 먹어보려 애를 써도 속에서 부터 거부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어요. 먹는 것 마다 다 토하고 심지어는 물도 못 먹었어요. 그 때만 해도 제가 비유가 약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말라리아 증상이었나봐요. 그 때부터 저는 컨테이너에 들어있는 라면과 된장등 한국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고, 컨테이너가 오면 그 동안 이 곳 선교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것을 독립을 하려고 하다보디, 더 많이 컨테이너를 기다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기다리던 컨테이너가 오늘은 서류가 부족해서, 그 다음 날은 관공서가 문을 빨리 닫아서, 휴일이라서, 마지막엔 관공서의 제너레이터에 기름이 없어서 서류를 복사를 못해서 못 온다고... 모든 이유들이 한국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었어요.
그렇게 실망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더 많이 생각했어요. 하늘을 떠나서 오신 예수님은 얼마나 많이 힘드셨을까?
하늘에서 생명의 컨테이너를 가져오셨지만, 이 땅의 지도자들은 컨테이너 안의 것들보다는 예수님께 뭔가를 더 얻는데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콩고의 공무원들이 어떻게 하면 무중구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받을까를 생각했던 것 처럼....

우리는 마하선교사들과 함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고, 우여곡절 끝에 컨테이너는 왔어요. 확실하게 온다고 했던 날 부터 8일만에. 공교롭게도 컨테이너가 도착한 시간에 저의 말라리아 치료의 마지막 링거를 거의 다 맞았어요.
그런데, 도착한 것이 끝이 아니었어요. 아침에 도착해서 우린 외국인이라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외국인 보면 돈 요구한다고-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오후 해질녁쯤 단 하나의 짐만 내리고 가버렸어요. 이유는 몸바사에서 부템보까지의 운송요금을 이 곳 대회에서 부담하기로 했는데, 운송비를 가져오기 전에는 못 내리겠다고.
대회가 너무 가난하여 4500불을 구하지 못해서 그 다음 날 평신도들에게 여기저기 빌려야만 했어요. 컨테이너가 돌아간 것도 속상했지만, 대회가 운송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평신도들에게 빌리는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 다음날 오후 늦게야 다시 와서 짐을 한참 내리다가 해가 지니 또 돌아갔어요. 겨우 한 상자가 남았었는데....

그래서 장작 3일 동안 짐을 내리고, 1주일내내 곰팡이 냄새나는 옷들을 빨고, 정리하고 끝이 없더라구요. 옷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요. 이제 다음 주 부터 BMW와 함께 무료진료와 전도회가 열리는데, 다행히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셔서, 식사준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긴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야채가 있지만, 아쉽게도 배추가 없답니다. 궁리끝에 이 곳에서 많이 나는 양배추로 김치를 담았는데, 그럭저럭 맛이 괜찮아서 모처럼 잘 먹고 있답니다. 요즘 한국에서보다 더 잘 먹고 있습니다.^^*
선교사로서 현지 음식도 잘 먹어야 겠지만, 음식 부분에서 만큼은 선교사이기를 포기하렵니다. 왜냐면 제가 건강해야 일도 잘 할 수 있을테니까요.

말라리아를 이렇게 빨리 허락하신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좀 더 잘 이해하고, 더 정성껏 돌봐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더 많이 감사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말라리아보다 더 무서운 죄때문에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를 생각합니다. 결국은 숨을 거두셔야 했던 주님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정복하신 죄와 죽음, 우리도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곳에서의 6년도 무사히 마칠 수 있으리라는 약속이라 생각됩니다.

다음주에 전도회 때문에 많이 바쁘겠지만, 곧, "윤주생각 콩고에는 - 콩고의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