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마흔 여섯 번째 이야기 -  가미가제 특공대에서 살아남은 안식일교인 청년

수즈끼 시게하루 목사는 2차 대전 당시 2,500명이 생명을 던진 가미가제 특공대의 일원이었다. 그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를 그의 제자인 의명삼육대학 관광일본어과 교수인 김수호 목사로부터 들어보았다.



전우들의 구두를 닦아주는 가미가제 특공대원


수즈끼 시게하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가제 특공대원이었다.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에게 있어서 출격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안식일교인이었던 어머니로부터 그리스도인 가정교육을 받은 수즈끼는 죽기 전에 좋은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항상 출격명령을 대기하고 있는 가미가제 특공대원들 사이에서 남을 위해 좋은 할 수 기회가 그렇게 많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밤 동료 대원들이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출격하여 인생을 마감할 지 모르는 이들은 아무렇게나 군화를 벗어놓았다. 수즈끼는 그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찾았다. 그들의 군화를 닦아주기로 한 것이었다. 동료들은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군화를 보고 의아해 했다. 스즈끼는 하루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밤마다 대원들의 군화를 닦으며, 그들의 안녕과 그들의 잠시 후에는 아들을 잃게 되는 그들의 부모님들을 위해서 기도드렸다. 매일 밤마다 그가 닦는 군화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한 번 출격한 동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가 출격명령을 받기 전에 전쟁은 끝났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우연한 기회에 전쟁 당시의 직속상관이었던 고바야시 중대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30년 전의 부하를 알아보는 그 상관이 다음과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내무반에 들어와 보니, 저쪽에서 자네가 전우들의 군화를 닦고 있는 게 아닌가. 저런 젊은이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자네 출격을 뒤로 미루었었네"

이상의 이야기는 1975-1977년 당시 일본의 삼육고등학교에 재학하던 김수호 목사님의 기숙사 사감이었던 수즈키 목사님의 실화입니다. 다음은 일본에서 선교를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 두 분의 목사님들이 영원한 복음의 선교사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일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일본인


바로 수즈끼 시게하루 명예목사입니다. 청년시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가미가제 특공대에 소속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형편 이였으나, 너무나도 성실하고 진실한 청년을 죽게 하기가 아깝다고 생각한 상관에 의해 2500명 이상이 죽은 가미가제 특공대에서 살아남아 후에 재림교회 목사가 되었다.

10세 때부터 동급생 중 일본에 노동자 자녀로 온 한국인들과 친구가 되는 등(당시 한국인들이 이지매-왕따-당하는 시절) 어려서부터 한국인을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김석만 목사님과 그 자녀들을(그 중에 하나가 현재 삼육대학교 관광일본어통역과장 김수호 교수/목사) 통해서 한국인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매일 같이 김치를 드시며 김치를 드시면 피부가 한국 사람처럼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일 축구경기가 벌어져도 한국이 이겼으면 한고 내심 응원할 정도이십니다.

은퇴 후 집을 팔아서 11년간 15회를 필리핀을 방문하여 필리핀교회를 도우며 선교활동을 벌이시며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PMM운동이 시작된 다음부터는 여러 나라에서 선교하는 한국인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하시고 지난 1년간 지속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사모님께서 손수 도시락을 싸다 주시기도 하시고, 쌀이며 각종 부식을 여러 번 공급해 주셨고 직접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시는 강연도 해 주셨습니다.

오늘(2004년 12월 29일)은 오셔서 방문 때 신을 구두를 선교사 5명에게 선물하고 싶으시다며 1인당 1만엔(약 1,000달러)을 주셨습니다. 일본인들은 방문자의 구두가 형편없으면 그 사람도 형편없는 사람으로 본다면서.... .

수즈끼 목사님을 대표로 소개 드렸습니다. 여러 일본 재림성도들이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계십니다. 이번 선교를 통해 재림교회가 세계적인 한 교회이며 한 형제임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특히 몇몇 일본인들은 본인들이 해야만 하는 것 그러나 하지 못하는 것을 한국의 젊은 대신 하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개척선교를 통해 한일교회성도님들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목사님 건강하세요. 다음에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치바에서 박종수 올림



일본인의 PMM 사랑

일본에 온 이래 지난 8개월간 PMM 선교사들을 향한 일본인 은퇴 목사 수즈끼 목사님의 따뜻한 사랑의 소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두가 쌀이 떨어져서 곤란할 때 그분은 적절하게 쌀을 보내주셨습니다.
얼마나 자주 과일을 먹겠냐고 사과를 1박스씩 보내주셨습니다.
고구마가 비싸서 사먹지 못하는 것을 아셨는지 1박스의 고구마를 보내주셨습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공예품을 만드는 요령을 직접 가르쳐주셨습니다.
PMM 선교사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매일 기도하시며,
선교사들이 소개되는 모든 자료들을 모아 스크랩북을 만들어 보여 주셨습니다.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강의하시곤 선뜻 식사를 제공해주셨습니다.(일본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수즈끼 목사님께서 내일은 선교사들에게 구두를 사주시기 위해서 오시기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일본인들은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구두를 신었는지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 쉽다고 하시며 좋은 구두(사장들이 신는 구두를 사 신으라고 하셨습니다.)를 사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구두를 신고 열심히 방문하라고 교훈을 주셨습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하시고 한국인에게 받은 사랑을 선교사들에게 보답하려고 하신다며 정말 열심히 돕는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선교사들은 그분의 사랑에 김치를 만들어서 답례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김치가 맛있다며 몇 번씩 인사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76세의 노령에도 불구하시고 선교를 위하여 애쓰는 모습과 선교사들을 후원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노 목사님의 모습에서 일본의 선교가 밝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즈끼 목사님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진환